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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통한 성장

후츠파, 자유로운 영혼의 이야기


후츠파

About. 후츠파

 

 후츠파의 사전적 의미는 '무례하고 공격적인 사람 또는 행동 혹은 담대하고 용감한 사람 또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최선의 정답을 찾기위해서 토론을 하는데 이를 명명하는 말이 곧 후츠파이다. 군대나 혹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위계질서를 따지기 보다는 열띤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 역시 그 의미에 함축되어있는 뜻과 같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비록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만약 우리의 눈앞에 불가능한 목표가 찾아온다면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는 과연 어떠 할 것인가? 아마 예측컨데 대부분의 경우 해보지도 않고 실패를 가정하며 포기한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예측 가능한 삶속에서  불확실성을 회피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 부터 불확실성에 익숙해 있지 않다. 교육체계 부터 살펴보더라도 교육과정이 불확실성에 익숙해지도록 설정해놓았다고해도 많은 교육자들이 확실성에 익숙해지도록 교육한다. 문제에 대한 답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기 보다는 아이들에게 지름길을 알려주거나 길을 터주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며  손쉽게 따라가도록 만든다.

 

 물론 스스로 학습하고 고민해 온 친구들도 존재하겠지만 한국의 교육체계 아래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길을 걸어왔으리라 생각이든다. 우리 인간의 뇌구조자체도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성향을 보이지만 이 와 같은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개인은 쉽고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제쳐두고 굳이 불확실성을 택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인들은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면 유대인들의 나라라고 단순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기술강국이며 동시에 '스타트업 국가'라고도 불린다. 무조건 부러워하기 보다는 우리는 과연 이스라엘은 어떤 배경에서 그런 성장을 이루어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과연 성장 할 수 있는 배경을 갖췄는가?' 하는 질문에 지리적으로만 본다면 사실상 그런 성장을 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으로 수시로 폭탄이 떨어지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가 의무 복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복무기간도 현재 한국의 육군 복무기간에 비해 긴 기간 동안 복무한다.

 

 

 이스라엘군은 불확실성이 강한 배경 속에서 무척 유연한 조직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맨 아랫계급의 말단 이등병도 능력만 있다면 장교가 될 수 있으며  군대 내에서도 무척 수평적인 체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유연성은 아이들의 놀이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스라엘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놀이를 할까?

 

 놀라지 마시라 이스라엘 아이들은 '쓰레기장 놀이터'라고 하는 곳에서 놀이를 하는데 그곳에는 아이들이 놀기에 다소 위험해 보이는 도구도 있고 아닌 도구도 있지만 분명 한국에 있는 학부모들이 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 경악할 터이다. 날카로운 물건도 있고 아이들이 다루기에 다소 위험해 보이는 물건도 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그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회피하지 않고 현실로써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우리는 가공한 현실 속에서 아이들을 일깨우고 규칙들을 정하곤 하지만 현실은 울타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현실 그자체를 말하기 보다는 환상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에게 환상을 보여주기 보다  현실 그자체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이스라엘에서는 공습 그 자체가 일상적인 일인데 공습에 대피해 방공호에 숨은 아이는 두려움이 벌벌 떨기보다는 어른들과 함께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공습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놀이에 몰입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위협은 삶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결코 위기 없는 삶은 없다. 살아감에 있어 고통은 기본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은 나와 다른 형질을 지니고 있기에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은 곧 누군가와의 마찰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위안 하며 온실속화초 처럼 자란 이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은 과연 진정한 위기 속에서 우뚝 일어 설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현실이다. 위기 속에서 이겨내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위기를 이겨낸 자들에게는 현실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부여된다. 즉  삶을 진실로써 마주 할 용기 후츠파정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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